T/T와 신용장, 결제조건을 가르는 세 가지 질문
수출 계약서에서 담당자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칸은 단가가 아닙니다. 결제조건 칸입니다. 그런데 이 칸을 채우는 데 실제로 필요한 판단은 세 가지뿐입니다.

거래처는 T/T로 하자고 합니다. 옆에서는 첫 거래니까 신용장을 열라고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라 오히려 못 정합니다. 검색해 보면 용어 설명은 넘치는데 정작 궁금한 건 그게 아닙니다. 우리 건은 어느 쪽이냐는 겁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한 데서 나옵니다. 돈과 물건이 어느 순서로 움직이는지만 보면 됩니다.
두 방식은 돈이 움직이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T/T와 신용장의 진짜 차이는 수수료가 아니라 누가 먼저 손을 떼느냐입니다.
두 방식에서 은행이 서 있는 자리가 다릅니다. 전신환송금에서 은행은 돈을 옮기는 심부름만 합니다. 수입자가 보내라고 하면 보내고, 안 보내면 안 보냅니다. 선적서류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물건이 실렸는지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신용장은 다릅니다. 은행이 서류를 직접 심사하고, 조건에 맞으면 지급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합니다. 갚을 사람이 수입자에서 개설은행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계약서에 흔히 들어가는 선급금과 잔금 구조를 떠올려 보십시오. 일부를 먼저 받고 나머지는 선적 후에 받습니다. 그런데 잔금이 들어오기 전에 물건은 이미 배에 실려 손을 떠나 있습니다. 그 며칠, 길면 몇 주 동안 수출자가 쥐고 있는 건 계약서 한 장과 상대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신용장이라면 같은 자리에 은행의 지급 확약이 놓입니다.

결제조건 칸은 대금을 언제 받는지 적는 자리가 아닙니다. 물건과 돈 중 누가 먼저 손을 떼고, 그 사이에 벌어진 틈을 누가 떠안는지를 정하는 자리입니다.
신용장 자체의 절차와 서류 심사에서 걸리는 지점은 신용장 거래 절차와 서류 하자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그럼 안전한 쪽으로만 가면 되는 걸까요?
T/T가 싸다는 말은 은행 수수료만 본 것입니다
전신환송금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줄어든 비용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신용장 개설수수료와 통지수수료는 청구서에 숫자로 찍힙니다. T/T로 바꿔서 아낀 그 돈은 어디에도 안 찍힙니다. 대신 대금이 안 들어왔을 때 붙잡을 상대가 수입자 하나뿐이라는 상태로 남습니다.

선적 후 송금 조건에서 수입자가 결제를 미루기 시작하면 손에 남는 건 독촉 메일과 소송뿐입니다. 상대는 외국에 있고, 변호사 비용을 따져 보면 물건값보다 클 때가 많습니다. 그사이 화물은 이미 상대 창고에 들어가 있습니다. 신용장이었다면 개설은행에 서류를 제시하면 됩니다. 심사에서 하자가 잡히지 않는 한 은행이 지급을 거절할 근거가 없습니다.

여기서 오해가 하나 더 붙습니다. 신용장이면 무조건 받는 줄 아는 것입니다. 은행이 보는 건 물건이 아니라 서류입니다. 서류에 하자가 있으면 지급은 미뤄집니다. 신용장은 조건 없는 보증이 아니라 서류를 정확히 맞췄을 때만 작동하는 장치입니다.

두 방식을 비교할 자리는 수수료 표가 아닙니다. 대금이 안 들어왔을 때 누구에게 청구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청구가 실제로 통하는지입니다.
서류를 어떻게 맞추는지는 커머셜인보이스와 패킹리스트 작성법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럼 우리 거래는 어느 쪽일까요?
결제조건을 가르는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앞의 내용을 다 잊으셔도 됩니다. 아래 셋만 물어보면 방향이 정해집니다.
결제조건 선택이 결국 상대를 얼마나 아는지, 한 건에 걸린 돈이 얼마인지, 물건을 넘긴 뒤 대금까지 얼마나 뜨는지의 조합이라서 그렇습니다.

첫째, 이 거래처와 몇 번째 거래인가. 처음 만난 상대라면 가진 정보가 계약서뿐입니다. 반대로 몇 년째 결제가 밀린 적 없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다만 이건 인상으로 세면 안 됩니다. 실제 발주 건수와 결제 지연 이력을 꺼내 놓고 세십시오.
둘째, 이 한 건이 틀어져도 회사가 버티는가. 못 받았을 때 회사가 흔들리는 금액이면 은행을 끼워 넣을 이유가 충분합니다. 반대로 샘플 수준 소액이면 신용장 개설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얻는 것보다 큽니다.
셋째, 물건을 넘긴 뒤 대금까지 며칠이 뜨는가. 이 틈이 길수록 위험이 커집니다. 선적 전에 전액을 받으면 틈이 없고, 도착 후 30일 송금이면 그 30일이 통째로 틈입니다.

표에 놓고 보면 대부분의 건은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 표를 옆으로 밀어서 볼 수 있습니다
| 상황 | 대금 공백 | 자주 쓰는 방향 |
|---|---|---|
| 첫 거래이고 금액이 큼 | 길다 | 신용장 또는 선급 비중을 높인 전신환송금 |
| 오래된 거래처, 결제 이력 안정 | 보통 | 전신환송금 |
| 소액 샘플, 반복 발주 | 짧다 | 전신환송금 |
| 첫 거래인데 상대가 신용장을 거부 | 길다 | 조건 재협의 또는 무역보험 검토 |

실무에서 제일 자주 걸리는 건 마지막 줄입니다. 상대가 신용장을 꺼리는 이유는 대개 개설할 때 담보와 한도가 묶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둘 중 하나만 고르는 문제로 보면 협상이 막힙니다. 선급 비중을 올리거나,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출보험처럼 회수 위험 자체를 따로 덮는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결제조건은 안전한 쪽과 편한 쪽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세 질문의 답을 놓고 위험을 어디까지 떠안을지 정하는 문제입니다.

정리하면
전신환송금은 은행이 돈만 옮기고 서류를 안 봅니다. 신용장은 은행이 서류를 보고 지급을 약속합니다. 비용 차이로 보이던 것이 사실은 위험을 누가 지느냐의 차이였던 셈입니다. 계약서 칸을 채우기 전에 거래 횟수, 한 건의 금액, 대금까지의 공백. 이 셋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셋 다 적어 봤는데도 어느 쪽인지 애매하다면, 그 애매함 자체가 답에 가깝습니다. 대개 위험이 생각보다 크다는 뜻입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조건 줄만 한번 보내 주셔도 됩니다. 견적을 받으실 필요도 없고, 결제조건 줄과 상대 국가만 있으면 어느 쪽이 무난한지는 그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FAQ
신용장을 열기로 했는데 T/T로 바꿀 수 있나요
당사자가 합의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개설된 신용장이 있다면 조건 변경이나 취소 절차를 밟아야 하고, 취소는 원칙적으로 개설은행과 수익자를 포함한 관계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개설 전이라면 계약서만 고치면 끝납니다. 바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개설 전에 말하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T/T 선급금은 보통 몇 퍼센트인가요
법으로 정해진 비율은 없습니다. 거래 관계와 품목, 제작 기간에 따라 달라지고, 주문 제작처럼 수출자가 먼저 돈을 들여야 하는 품목일수록 선급 비중이 올라가는 편입니다. 비율보다 중요한 건 잔금이 들어오기 전에 물건이 상대 손에 넘어가 있는 구간이 며칠이냐입니다.
신용장인데도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있나요
있습니다. 은행은 물건이 아니라 서류를 심사하므로, 제시한 서류가 신용장 조건과 어긋나면 지급이 보류될 수 있습니다. 선적기일이나 서류 제시기간을 넘긴 경우, 서류끼리 숫자나 표기가 안 맞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하자의 유형과 대응은 별도 글에서 다뤘습니다.
소액 거래에도 신용장을 여나요
드뭅니다. 개설수수료와 서류 준비 시간이 금액과 상관없이 고정으로 들어가서, 건이 작으면 얻는 안전보다 드는 비용이 커집니다. 소액이면서 상대를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선급 비중을 올리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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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무역법 제13조(특정 거래 형태의 인정 등),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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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가치세법 제21조(재화의 수출)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1조(수출의 범위),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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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환신용장통일규칙(UCP 600), 국제상업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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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보험 제도 안내, 한국무역보험공사